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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진화론자로 산다는 것


그다지 길지 않았던 런던에서의 체류. 할 수 있는 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많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단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다윈전이 열리고 있었거든요. 자연사 박물관+ 다윈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을 그것만으로 가득 채울수 있을 괴멸적인 소재죠. 사진은 지하철 곳곳에 붙어있었던 포스터. 오빠!!!!ㅠㅠ/ 

저는 꽤 공공연한 다윈의 팬입니다. [이기적 유전자->이타적 유전자->종의 기원->기타등등~] 의 꽤 흔한 진입 테크를 탄 저렴한+ 아마추어+ 취미성 학도긴 합니다만서도. 도킨스에 대해서는, 좋아하긴 하지만 다윈을 제대로 알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는 데서 더 감사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접했을때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어요. 일년의 절반은 고민하고 답을 구했던, 다른 것이 시원스럽게 설명해줄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희미하게나마 바라볼 수 있었던, 지축이 바뀌는듯한 앎이었습니다. 세상을 꽤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던 제가, 결정적으로 발전하는 인간성이나 인간성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도 그 때 즈음인 것 같습니다. 자연선택으로 자연의 비정함을 말하는 것 같은 학문(다윈의 진화론)을 알고 그렇게 되었다는 게 사회적 진화론자의 관점에서는 미묘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만. 뭐 저는 사회적 진화론자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오빠를 변호하기 위해 몇 가지 진화에 대한 잘못된 상식.

1. 에이 원숭이가 어떻게 인간이 돼요?
원숭이는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종의 갈래가 다르거든요. 고등학교때 생물을 대충 공부한 분들이나, 일부러 공부하려 하지 않았던 분들이 흔히들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이죠. 진화의 방향은 계단식이나 사다리식이 아니라 나무와 비슷합니다. 원숭이는...촌수로만 따지면 저희와 거의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통조상이 있다고 하면, 거기서 다르게 진화한 먼 친척인 셈이죠. 조상님이 아니라.

2. 현재 진화하고 있는 생물이 없는 것 같은데?
진화는 원래 엄청난 시간을 두고 일어납니다. 몇천년? 아니죠. 종의 분화급의 진화는 아주 적게 말한다고 해도 수만년이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세대교체를 통해 일어나니까요. 하지만! 현재 우리도 관찰할 수 있는 진화의 모습들이 분명 있습니다. 예컨대 바이러스의 빠른 진화가 그것이죠. 과거의 항생재로 대응 불가능한 슈퍼 바이러스들이 하늘에서 바로 떨어졌을까요? 그 과정을 몹시 간단하게 설명하면, 바이러스가->항생재라는 환경에 의하여(항생제를 버틴 바이러스들이 성공적으로 살아남아)->슈퍼 바이러스가 쨘! 사육되는 동물들의 인위적 종자개량도(유전자 조작 말구요^.^)일종의 진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3. 인간처럼 우수한 생물이 세상 어디에 있죠?
이렇게 인간의 특이성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인간이 모든 종의 상위에 존재한다는 증거는...슬프게도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가장 큰 특징은 무목적성입니다. 인간은 분명히 큰 뇌를 가지고 사고하는 생명체지만, 그것이 종으로서 최종형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될 수 없죠. 물론 학계에서는 그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을 내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히 설명하려니 '잠깐 몇 가지'론 해결이 안되기도 하고, 저 역시 공부가 더 필요한 학생이라 제 생각만 짧게 말하고 넘어갈게요. 개인적으로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아무런 변화의 자취 없이 공룡보다 오래 지구를 점령하며 존재할 수 있다면 어? 좀 대단한데...혹시? 라는 생각을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서구인과 동양인의 사이에도 해부학적 차이점이 있구요. '우리가 제일로 우수하다' 는 그 생각이 바로 나치당을 낳았죠. 진화론의 대표적인 잘못 이해된 경우입니다. 

4. 다윈도 죽기 전엔 창조론을 인정했대요. 
이건 진화론 상식은 아니지만 꼭 이 말 하는 사람이 있길래...
제가 본격적으로 독학을 시작하기 전이었을 거에요. 다윈 ㅎㅇㅎㅇ 상태이던 저에게 한 친구가 그러더군요. 황당해서 엉 그래?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이것이 상당히 흔히 퍼진 말이란 걸 안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다윈의 간병인인지 가정부였는지 하는 사람이 증언한 말이라고 하네요. 냄새가 나죠? 카더라 통신은 믿으면 안된다는건 세상의 상식이지만, 철썩같이 믿고 계시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에 잠깐 언급. 다윈은 불가지론자였습니다...그의 아내는 신실한 종교인이었으므로, 그런 다윈을 안타까워했다고 하네요. 


다윈의 진정한 대단함은 그가 멘델 이전에(!)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생각하고, 정리하고, 학회를 구성하여, 당대의 그 어떤 지식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심지어는 다윈 그 스스로도 부분적으로 잘못 이해했던 개념으로 사회의 대표 아이디어에 변화를 주었다는 데 있습니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 사상변화를 주도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하네요. 물론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은 존재했지만, 그 기재를 제대로 설명하고, 사회의 사상에 지각변동을 준 건 그이니까요. 자연선택! 매력적이죠?


여기까지가 사설. 지금부터가 본론.

진화론을 공부하거나, 그 학자들의 생에 대해 알아보거나, 여러 기재들에 대해 탐구하는 것은 매혹적인 일이고 때때로 말도 못 할 앎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임을 자처할때 집중포화를 받는 일이 많은 것은, 그 이론이 비교적 지배적인 종교의 세계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 종교와 도덕을 탄압하는 시대가 온 것인가? 비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이 종교를 탄압한 적은...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는 지구가 둥글다는 말에도 사람들은 돌을 던졌죠. 사람들은 모두 위풍당당했던 과거를 잊고 피해의식에 절게 되어 있는 생물인 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인간이 이루고 발견해 낸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짠해집니다.

저는 불가지론자는 아닙니다. 무신론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전 어느 정도의 초자연현상은 믿고, 믿고 싶지만, 절대적 힘을 가진 선한 인격신은 믿을 수 없습니다. 딱 그 정도.

진화론자로 산다는 것은, 과학이 과거에 비해 거대한 파워를 가지게 된 지금도 너무나 힘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이과계가 아닌+ 주변에 종교를 믿는 사람이 많은 경우엔. 저는 딱히 스스로의 성향을 선전하고 다니진 않지만, 꼭 물어들 보시더라구요. 왜 교회에 안 다니는지... ^_T 다닐수야 있죠. 실제로 꽤 오래 다녔고, 성경 완독도 두 번, 성경공부도 꽤 했습니다. 키워주신 분도 교회 분이시구요. 교회 다니시는 분들도 참 좋아라 합니다. 착한 사람, 예쁜 사람들도 많고...하지만 어느순간, 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아니 대답하지 않는, 생각조차 죄가 된다는 듯 꺼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가장 사랑하는 신이 만들었다는 세상에 대해 '왜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냐? 생각을 그만둬라'라는 말을 하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다니...'하는 생각이 들어 버려요. 
저런 반응을 맞이했을 때, 과거였다면 차라리 전투적이 될 수(즉 상대의 생각을 바꿔보려 설득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최근엔 말하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 모든 걸 포기하는 걸 반복하고 있어요. 진화하는 세계와, 창조된 세계. 관념이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일까요.
뭐 종교와 과학에 대한 문제는 수많은 과학과 종교계의 존잘분들이 이미 엄청난 걸작들로 정리해줬으니 따로 쓸 생각이 없는 한 이쯤에서 그만하겠습니다. 충분히 부끄럽네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실컷, 질리도록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최고의 기쁨이죠. 그런 의미에서 혼자 과학공부를 하는 전 좀 허무하고 심심하고... 학회 문을 두드리자니 앎이 모자란 것 같고! 다윈과 진화론들에 대해 제대로 신나게 대화해 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앎이 모자라단 생각도 들어요. 이제야 몇 가지 수업을 듣고 있어서, 예전보다 많은 걸 알게 되는 중입니다! 세포와 생명의 신비 ㅠㅠ 오오오... 

쓰다보니 친구 구하는 글처럼 되어 버렸네요. 직립보행에 대한 책을 읽다 마음속 깊이 감격+며칠 전 기독교도인 친구를 잃은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이 짬뽕되어 이런 게 나온 것 같습니다ㅠ_ㅠ

저도 아는 것이 많진 않지만, 오히려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알아가는 것은 너무나 즐거워요.
진화하는 자연은 얼핏 냉혹하게도 보이지만, 그 유기적인 변화상을 정말 좋아합니다.


+]내용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지적 환영입니다.^^/
by Lucy | 2009/09/18 21:05 | 생각거리 | 트랙백 | 덧글(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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